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서독 국경 (문단 편집) == 접경지역: 치헤리-뵈크비츠 마을의 경우 == [[https://upload.wikimedia.org/wikipedia/commons/thumb/b/b5/Zicherie_Stein.JPG/640px-Zicherie_Stein.JPG|치헤리에 세워진 표석: "독일은 나뉘어질 수 없다. 치헤리, 1958년 6월 17일"]][* DEUTSCHLAND IST UNTEILBAR. ZICHERIE 17.6.58.] [[니더작센]](서독)의 치헤리(Zicherie) 마을과 [[작센안할트]](동독)의 뵈크비츠(Böckwitz) 마을은 각기 다른 주에 속해 있었지만, 한 생활권인 사실상 하나의 마을이었다. 그러나 동서독이 분단되면서 이 두 마을도 강제로 갈라졌다. 1987년판 에서 이 마을을 소개한 바를 보면, 1945년 7월 1일 [[소련군]]이 뵈크비츠로 들어와 치헤리 마을과의 사이에 경계선을 세웠다. 그날 이후로 두 마을 사이에는 사실상 자유 통행이 어려워졌고 당분간 학생들의 통학만 허용되었으나, 그마저도 끝내는 중단되었다. 처음 몇 년간은 외진 길로 돌아가거나 소련군에게 술을 뇌물로 주면 통과할 수 있었지만 동독 경비대가 배치되면서는 그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고, 1952년 5월에는 두 마을 사이에 높이 3m의 나무 담이 쳐졌다. 그리고 뵈크비츠 마을의 거주민 중 스무 가족은 후방 [[작센]]으로 쫓겨났는데, 추방된 가족 중 한 가족만 빼고는 이후 동독을 탈출하여 치헤리 마을로 돌아왔다고 한다. 1960년대 들어서 장벽은 더욱더 단단해졌다. 이 장벽으로 당연히 이산가족도 생겼지만, [[독일 재통일]]로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되면서 두 마을은 다시 합쳐졌다.[[https://www.ytn.co.kr/_ln/0104_201411082159246866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